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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명절의 역설: 파편화된 가족과 피상적 관계가 남긴 짙은 외로움

By Editor-in-Chief|Published:
[사설] 명절의 역설: 파편화된 가족과 피상적 관계가 남긴 짙은 외로움

[사설] 명절의 역설: 파편화된 가족과 피상적 관계가 남긴 짙은 외로움

한국 드라마를 보면 유난히 명절을 기점으로 부모와 자식, 형제와 동서 간에 묵혀둔 감정이 폭발하며 갈등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설날과 더불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가장 중요한 대명절인 추석에, 도대체 왜 한국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반목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것일까.

추석의 본래 의미는 고대 신라의 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제3대 유리왕은 수도의 여성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간 길쌈 경쟁을 벌이게 했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온갖 유희가 어우러지는 국가적 축제를 열었는데 이를 ‘가배(嘉俳)’라 불렀다. 시대가 흘러 씨름이나 강강술래 같은 풍속은 희미해졌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추석은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감사하며 가족의 결속력을 다지는 가장 큰 축제로서의 상징성을 지녀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명절은 결속을 다지기는커녕 갈등과 분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최근 들어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는 대신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급증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도시 광역화, 수도권 쏠림 현상, 그리고 핵가족화를 넘어선 1인 가구의 증가 등 여러 구조적 원인이 맞물린 결과다. 미디어의 발달과 극단화된 개인화는 가족 간의 유대마저 약화시켰다. 본질적으로는 ‘먹고살기 팍팍해진’ 현대인들의 고단한 현실이 명절의 여유를 앗아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스트레스와 유대감의 상실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간의 불신과 불화로 이어졌다. 상처를 주고받느니 차라리 안 보는 것이 속 편하다는 체념이 명절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이 떠난 빈자리를 오히려 ‘얕은 유대관계를 맺은 타인들’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타인과의 만남에서는 굳이 감정적 스트레스를 감수할 필요가 없고, 서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화풀이의 대상이 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우리 사회는, 가족의 유대는 해체하면서 명절조차 타인에게 의존하여 외로움을 달래는 역설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통찰적 시각 물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상처와 반목이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지속되는 것을 마냥 옹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아픔을 극복하고 서로를 껴안으며 가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야말로, 가족을 넘어 타인과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 ‘내면의 넉넉함’을 기르는 필수적인 배움터다. 혈연이라는 가장 끈끈하면서도 복잡한 관계 속에서 갈등을 풀어내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피상적인 관계망 속에서 아주 작은 자극이나 불편함에도 쉽게 삶의 균형을 잃고 극단적인 행동마저 서슴지 않는 위태로운 개인이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둔 타인들 사이에서, 과거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가 주던 깊은 편안함과 위로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서로 예의를 차리며 "피곤한 가족보다 타인이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행복한 척 웃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대끼고 멍들면서도 끝내 서로를 보듬어 안는 가족 안에서의 ‘인간성 회복’이라는 귀중한 깨달음을 외면한다면, 극단적 이기주의와 얕은 만남의 연속은 종국에 우리를 더욱 짙고 병적인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상처를 넘어서는 포용,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온기에 대해 다시금 성찰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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